글씨가 작다면 크다면개인적인 : 2009/07/06 14:20
어제 오렌지 주스가 마시고 싶어 동네 슈퍼로 나갔다.
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반팔티에 반바지, 슬리퍼를 찍찍 끌고 가 냉장고 안의 수많은 오렌지 주스들을 바라보며 살짝 고민하고 있는데 누가 날 툭툭 친다.

'약 어딨어~?'

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가 웃으며 맑은 표정으로 나에게 물으신다. 순간적으로 슈퍼 계산대를 쳐다봤는데 저기도 계산하느라 정신없구나.. 내 선에서 해결하자 싶어 재빨리 슈퍼에서 파는 물품들을 떠올리며 나름의 추리를 끝낸 후 여쭸다.

'치약이요?'
'응, ..약.'

'치'발음을 하신다고 하셨는데 치아가 없으셔서 발음이 좀 새셨다. 암튼.. 치약...

두리번 거리다가 한쪽에 진열되어 있는 치약들 앞으로 모셨다.

'여기 있어요.'

그리고 나서 속으로 피식, 웃었다. 지금 내 옷차림이 카운터의 직원과 다를 게 없잖아.
나름 신경써서 고른 오렌지 주스 하나를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. 그런데 뒤에서 누가 날 툭툭 친다. 아까 그 할머니다.

'어느 게 더 좋아?'

죽염치약과 2080치약 사이에서 고민스러우신 듯, 역시나 맑은 표정으로 물어보신다.

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죽염치약을 권하고 싶었으나 가격을 잘 모르겠어서 계산대의 직원에게 가격 좀 찍어달라고 말했다. 죽염치약이 400원 비싸다.

'(죽염치약을 들고) 이게 400원 더 비싸요.'
'(죽염치약을 건네받으시고) 좋아서 비싼가?'

뭐라고 해야 하나 멈칫했다. 정말 더 좋아서 더 비싼 걸까..? 그 사이 같이 계산대에 서 있던 어느 아주머니가 할머니를 향해 웃으시며 말씀하신다.  '그럼요~그거 쓰세요.'

오렌지 주스와 담배를 담은 검은 봉지를 들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하는 길..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.
Lou Rinser(aka_수현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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